뚱별이의 소소한 하루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매일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1446년(세종 28년)에 반포된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당시 일반 백성들은 유일하게 존재했던 언어인 한자를 모르다 보니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사정을 관청에 호소하려 해도, 억울한 재판을 받아도 바로잡아 요구할 도리가 없었다. 훈민정음 서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세종대왕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을 만들었다.

 

 

세종의 바람대로 훈민정음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글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라도 하루면 쓸 수 있을 정도로 배우기가 쉽다. 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이렇듯 한글 창제는 세종대왕의 가장 위대한 업적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제 시기와 동기, 과정 등이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세종의 말과 당시 집현전 학자였던 정인지가 훈민정음 서문에 쓴 글을 토대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세종의 말은 이러했다.

 

 

“사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율문에 의거하여 판단을 내린 뒤에야 죄의 경중을 알게 되거늘, 하물며 어리석은 백성이야 어찌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크고 작음을 알아서 스스로 고치겠는가. 비록 백성들로 하여금 다 율문을 알게 할 수는 없을지나, 따로 큰 죄의 조항만이라도 뽑아 적고, 이를 이두문으로 번역하여 민간에게 반포하여 우부우부(愚夫愚婦)들로 하여금 범죄를 피할 줄 알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정인지는 훈민정음 서문에 이렇게 썼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를 청단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이렇듯 훈민정음은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당시 지배층이었던 양반들은 한글 창제를 반대하고 나섰다. 한글이 창제되고 훈민정음을 반포한 이후에도 조선의 지식인들은 '언문(諺文)', '언서(諺書)', 여자들이나 쓸 글이라 해서 '암글'이라며 한글을 비하했다.

 

 

기득권 세력의 반대와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종은 오로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글 창제에 힘썼다.어릴 때부터 안질을 앓았던 세종은 밤낮으로 한글 연구에 몰입하여 한글을 완성하기 2년 전인 1441년에는 지팡이를 의지해야 할 정도로 시력이 나빠져 있었다. 세종실록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내가 두 눈이 흐릿하고 깔깔하며 아파 봄부터는 음침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아니고는 걷기 어려웠다"(세종 23년(1441년) 4월 4일, 세종실록 92권)

 


백성을 사랑하는 일념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훈민정음. 세종대왕은 이후로는 백성들이 글을 깨우쳐 이치를 깨달아 죄에서 멀어지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해 지금의 우리는 문맹을 벗어나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글을 몰라 죄가 죄인 줄 모르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무지했던 백성들의 모습은 하늘에서 범죄하고 이 땅으로 쫓겨나 참과 거짓을 분별치 못해 이 땅에서도 죄를 짓고 살아가던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에스겔 28:11~17, 마태복음 9:13).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여 바른 진리에 나아가지 못했다. 종교 기득권층의 유전으로 뿌리내린 일요일예배와 크리스마스가 올바른 예배의 날이며 예수님의 탄생일이라고 배우며 지켜왔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복을 빌며 교회에는 당연히 십자가가 걸려 있어야 하는 것으로 믿어왔다.

 


일요일예배와 크리스마스가 하나님이 아닌 태양신에게 경배하는 행위라는 것을 몰랐던 우리는 그 행위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며 죄를 더해가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다. 십자가가 우상인 줄 몰랐던 우리는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신성시하며 하나님죄를 더해만 갔다. 영혼의 눈이 먼 채로, 즉 영적 문맹으로 살아 왔던 것이다.

 


우리는 무지함으로 성경을 올바로 볼 수 없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기에 구원에 나아가는 바른 진리는 찾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 우리 영혼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물론, 올바른 진리를 배울 권리마저 침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 (누가복음 4:16~18)

 


무지몽매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어 초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진리를 배울 권리, 우리 영혼이 누릴권리를 찾아주신 분이 계신다. 바로 재림 그리스도 하나니의교회 안상홍님이시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은 영적 소경이었던 우리들에게 복된 소리로써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성경의 올바른 진리를 알려주셨다. 매주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은 일요일이 아니라 안식일(토요일)이고, 크리스마스는 태양신의 탄생일일 뿐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날이고, 죄사함을 받고 영생에 나아갈 수 있는 진리가 새 언약 유월절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출애굽기 20:8~11, 마태복음 26:17~28). 그리고 십자가는 절대 세워서는 안 될 우상이며 이방의 풍습이라고 알려주셨다(출애굽기 20:4~6, 예레미야 10:1~5).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즉 훈민정음을 통해 백성들에게 올바른 깨우침을 주려 했던 세종대왕처럼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는 복된 소리, 즉 복음을 통해 영적 소경이었던 우리들에게 성경의 바른 진리를  깨우쳐주셨다. 세종대왕처럼 온갖 비난을 받으며 고난과 고초를 겪으셨음은 물론이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고귀하신 희생으로 지금의 우리는 바른 진리를 깨닫고 영생에 나아가게 되었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앞에 무엇이 죄악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되어 우리의 모든 영적인 권리를 찾게 된 것이다.

 


복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지고지순하신 사랑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통해 성경의 올바른 진리를 배우고 선악을 분별하여 다시는 무지함으로 죄를 짓지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라실 것이다.

 


<참고자료>

1. ‘한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세계문화유산 이야기(한국편)', 북멘토

3. '한글날', 한국세시풍속사전

4. '세종대왕', 네이버캐스트

5.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조선일보, 2015. 10. 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0/2015091001226.html

 

 

출처_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