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별이의 소소한 하루

선배의 충고

 

 

어떤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후배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성경은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성경을 너무 파고들지 말게.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같은 정통교단이라면 따지지 말고 다니면 되고,

이단교회만 조심하면 되네.

내 생각은 다 버리고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고 아멘 소리도 크게 해야 하네.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받은 것이니까 걱정 말게나.

자칫 사람 때문에 시험에 들 때는 그저 하나님만 바라보게.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주일은 꼭 지키게.”

 

 

 

 

 


인간적인 정이야 감사할 일이지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더욱이 그는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새 언약의 안식일, 유월절 등

하나님의 절기와 계명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후배의 신앙이 오래가지 못하거나 독실해지기는 어려울 거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후배는 교회만 가면 설교 때마다 졸음이 쏟아져서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해서 도저히 더 이상 못 나가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예배 시 졸음현상은 작금의 기독교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 듯했다.

졸음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인데,

몸이 피곤해서 졸았다면 몰라도 설교가 이해되지 않는다거나

틀에 박힌 내용, 잘못된 해석으로 영혼이 혼수상태나 수면상태에 빠져들었다면

이는 설교자의 귀책사유가 될 것이다.

 

고속도로에서는 음주운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졸음운전이다.

시속 100km 주행 시 1초 동안 눈을 감고 달리는 사이에 차량은

어느덧 방향을 잃고 28m나 질주하게 되어 인사 사고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찰나의 졸음운전으로 중상이나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졸음운전은 생명을 파멸시키는 흉기가 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출처_pixabay

 

 

 

 

잠든 영혼을 깨우는 하나님의교회 새언약 안식일

 

 


모순 없이 바르게 해석된 성경의 진리는 오히려 잠든 영혼을 깨어나게 하며 잠 못 이루게 한다.

그 진리의 말씀이 마치 날선 검 같으면서도 달콤한 꿀 같기 때문이다(히브리서 4:12, 시편 19:10).

실제로, 필자와 신앙생활을 함께하고 있는 어느 성도는 우연히 알게 된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로부터 새 언약의 안식일에 대해 듣던 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개신교 신앙 2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달다는 것을 그제야 실감했다고 한다.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말씀은 단 두 구절이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장 16절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행전 17장 2절

 

 

 

 

 

 

 

 

하나님의교회 모세의 율법이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변역되다

 


그동안 “십자가 이후로 안식일이 폐지되었다”는

개신교 목사들의 해석을 굳게 믿어온 터였다.

그런데 성경은 그와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십자가 이후로 안식일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예법이 달라진 것이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태복음 5장 17절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모세의)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장 20~21절

 


성소에서 양을 잡아 지키던 모세의 율법이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변역된 것이다.

그런데도 “안식일이 폐지되었으니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로마의 황제가 만들어낸 일요일 성수를 강조하는 것은 크나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교회 새언약 안식일 폐지되었다는 유언비어

 


하나님께서 명하신 법이 폐지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과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은

분별력이 부족한 수많은 영혼들로 하여금 마치 독약을 보약으로,

독버섯을 식용버섯으로 착각하게 하여 안심하고 마음껏 먹고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무서운 범죄라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옛 뱀, 곧 사단 마귀가 인류를 어떻게 꾀었는지 생각해보라.

선악과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먹고 싶도록 미혹했던

옛 뱀이 공룡처럼 죽어서 그저 화석으로 남아 있을까?

옛 뱀은 현재도 광명의 천사처럼 거룩한 모습으로 가장하고

하나님의 믿는 사람들 주위에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만이 사단의 속임수를 분별하게 될 것이다.

끝까지 속을 수밖에 없는 영혼들이 너무나 가련하고 불쌍하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린도후서 11장 14~15절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도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요한계시록 12장 9절, 17절

 


<참고자료>

‘충분한 휴식, 졸음운전 예방법입니다’, 충남일보

 

 

 

출처-패스티브닷컴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에는 사람이 미처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모략이 내재해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두어 아담 하와가 따 먹게 하신 것도, 하와를 꾀었던 뱀을 만들어두신 것도 하나님의 기기묘묘한 구속의 경륜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도 하나님의 모략이라 볼 수 있습니다. 육체로 오신다고 성경 가운데 미리 알려주시고 실제로 그렇게 오셨는데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라보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기묘자요 모사이십니다.




이사야 9장 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선지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의 입장으로 이 땅에 오시되 그 이루어가시는 모든 일들이 기묘하고 모략이 넘치는 모사로서 섭리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한 아기, 곧 육체로 임하실 것을 예고하시고 700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하나님이 아닌 것 같은 모습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사야 53장 1~3절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들[聖子]의 입장으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풍채나 외모를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귀히 여기지 아니할 만큼, 철저히 영광을 가리시고 이 땅에 등장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모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자녀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 지구는 도피성, 곧 범죄한 영혼들의 감옥이기 때문에 하늘 죄인들이 얼마나 자숙하고 회개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육을 입고 오셔서 시찰을 해보신 것입니다.

오셔서 보니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자들이 죄인으로서 회개하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을 부리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외모로만 바라보고, 천국 갈 수 있는 참된 말씀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오히려 배척했습니다.




이 역사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66권이 실상은 인류가 바르게 이해하고 풀어야 할 하나의 과제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령시대에는 성령과 신부로서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과 함께 어머니 하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수수께끼 책을 보면 앞에 나온 질문에 대한 해답이 맨 뒤에 있듯, 성경의 맨 뒤에 성령과 신부라는 정답이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이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께 나아가 생명수를 받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뜻이요, 성경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장제스 군대의 수도꼭지

 

 

1949년 중국 대륙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는 동시에 공산화가 선포되었다.

당시 마오쩌둥(毛澤東)과의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혁명군 총사령관 장제스(蔣介石)는

대만으로 도피해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분리된 ‘중화민국’을 세웠다.

 


중국 본토에서 패주하고 대만으로 건너간 장제스의 군대는

수도꼭지만 돌리기만 하면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중국에서는 한 번도 수도꼭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너도 나도 철물점에서 수도꼭지를 사다 벽에 박았다.

그런데 아무리 수도꼭지를 틀고 기다려봐도 한 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군인들은 장사꾼들에게 속은 줄 알고 철물점으로 쳐들어가 총을 겨누었다.

수돗물이 땅속에 묻혀 있는 수도관을 통해 나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수도꼭지만 벽에 박아 놓으면 물이 나올 것이라고 착각하여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던 것이다.

 

 

 

 

 

 

성령시대에는 누구에게 나아가야 생명수를 받을 수 있을까?

 

 


성경은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해 생명수를 받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수는 아무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실 수 있는데, 시대마다 생명수를 주시는

구원자가 누구인지 알고 나아가야 생명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성부시대에는 생명수의 근원이 여호와였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어 성자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생수를 허락해주셨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예레미야 2장 13절)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장 14절)

 

 


그렇다면 지금 성령시대에는 누구에게 나아가야 생명수를 받을 수 있을까?

바로 성령과 신부다.

시대에는 성령과 신부, 즉 아버지 하나님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영생할 수 있는 생명수를 얻을 수 있다.

 



장제스의 군대가 물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물을 얻지 못하고

철물점에 쳐들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였던 것처럼,

생명수의 근원을 알지 못하면 생명수를 얻을 수 없음은 물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처구니없는 행위를 하게 된다.

 2천 년 전 구원자로 이 땅에 임하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대적했던 유대인들처럼 말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요한복음 8장 19절)

 


벽에 수도꼭지만 박는다고 해서 물이 나오는 건 아니다.

아무 교회나 생명수가 나지는 않는다. 생명수의 근원이신 성령과 신부,

아버지 하나님 안상홍님과과 어머니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교회에 가야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얻을 수 있다.

 


<참고자료>

1. ‘중국-대만 통일정책’, 시사상식사전

2. ‘수도꼭지와 수돗물’, KBS 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

 

 

 


출처: 'Usain Bolt: My Rio Highlights', 유튜브

 

 

 

세계 정상에 서기까지

 

 

‘인간 탄환’,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고 불리는 이가 있다.

 자메이카의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다.

그는 얼마 전 막을 내린 리우올림픽에서 올림픽 3관왕 3연패를 달성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2012 런던올림픽에서 남자 육상 100m, 200m, 400m 계주 부문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세 종목 모두 우승을 거둔 것이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100m 세계신기록을 세운 이후,

연이어 신기록을 경신했을 뿐만 아니라

남자 육상 200m 세계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5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도 석권했다.

 


이처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육상 스타,

우사인 볼트는 196cm나 되는 장신을 자랑한다.

그러나 단거리 육상선수에게 큰 키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육상선수의 이상적인 신체조건은 적당한 보폭에

공기의 저항도 적당히 받는 170cm 중후반이라고 한다.

 

 

 

이미지출처_게티이미지코리아

 

 


더욱이 볼트는 육상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다. 바로 척추측만증이다.

볼트가 달릴 때 유독 어깨와 골반의 움직임이 큰 것도 척추측만증 때문인데,

이로 인해 볼트는 남들보다 스타트가 느리고, 부상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척추가 휘면 그만큼 골반이 심하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2005년 세계 선수권대회에서는 경기 도중 통증 때문에

걸어서 결승점에 들어가야 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볼트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더 나은 기록을 보유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철저한 식이요법으로 세계 최정상을 유지해오고 있고,

척추측만증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경기 출전을 멈추고 맞춤 훈련과 재활에 전력했다.

근육을 강화하는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 결과, 허리를 지탱해주는 강한 근육이 만들어졌고,

자신의 약점은 오히려 강한 힘이 되어

그를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이미지출처_경인일보

 

 


우리는 때때로 많은 어려움과 난관에 봉착할 때가 있다.

특히 천국이 가까울수록 이겨내야 할 어려움과 난관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냈던 것처럼

복음의 경주를 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나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린도전서 9장 23~25절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볼트는 세계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식이요법을 하고,

매일 고통을 견디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훈련에 임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없어질 영광을 위해서도 이토록 자신을 절제하고 노력하는데

하물며 영원한 하늘의 영광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겪는 잠깐의 고난과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며

앞으로 받게 될 하늘의 축복을 바라고 믿음의 길을 걸어갔음을 고백하고 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장 7~8절

 

 

 

 

 


하나님의교회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는 하늘나라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셨다(고린도전서 2:9).

그러한 곳에 들어가는 영광을 이 땅의 안일함과 게으름과

편리함에 취해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도 자신을 이기고 선한 싸움을 싸웠고,

이 땅의 세계 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도

그 위치에 오르기까지 자신과의 싸움을 싸웠다.

앞으로 영원한 의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교회 우리도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해야 할 것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4장 12절


<참고자료>

1. ‘우사인 볼트’, 네이버캐스트

2. ‘늦잠에 척추측만증 볼트 왜 빠른가’, 한겨레

3. ‘볼트 ‘인간 탄환’ 비결’, 부산일보

 

 

 

70억 인류 구원.

 

세계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선포한 2016년 세계 복음 목표이다.

올 초 거행된 '새예루살렘 판교성전' 헌당식은 전 인류 전도를 향한 대장정의 첫걸음이었다.

 

 

하나님의 교회는 1964년 교회 설립 이후 50년 남짓 만에

세계 175개국 2천 500여개 교회에서 250만명의 성도가 함께하는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교회다.

 

 

세계 각국에서 지속적·헌신적인 사회봉사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해마다 1천명이 넘는 해외 성도들이 성지인 한국을 찾는다.

해외 성도들은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본국에 알리면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민간외교관 역할을 하면서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맡고 있다.

 


 

 

 

날마다 성장하는

하나님의교회를 시기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안식일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는 이단이다.

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는 이단이다.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는 이단이다.

봉사활동 많이 하는 하나님의교회는 이단이다.

하나님의교회는 이단!!! 진짜용~~~~???

 

 

 

 

 

 

사전은 ‘이단’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 옳지 아니한 도,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 정통에서 벗어나 이의를 내세우는 설.

바른 신앙에서 벗어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이단이다.

 

 

 


이단을 분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아무리 오랫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이단에 속해 있다면

신앙의 궁극적 목적인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기독교 인구는 대략 10~15억 명이라고 한다.

그만큼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교회가 있다.

 

 

과연 이렇게 많고 많은 교회 중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반항하는 이단과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정통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단을 판단하는 잣대는

오로지 성경이어야 한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베드로후서 2:1~3)

 


성경이 말하는 이단의 특징을 보면

성경에 없는 지은 말, 즉 거짓말로 가르친다는 점이다.

 성경대로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가 정통과 이단을 식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규례만 살펴보더라도 이단인지 아닌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4~15)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하시는도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돈키호테에서 유래한 영국 속담에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는 말이 있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났다는 뜻으로 부모의 부와 명예가 자식세대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최근 한 대학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자산의 비중이

1980년대에는 27%에 불과하던 것이 1990년대에는 29%, 2000년대에는 무려 42%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그만큼 부모가 소유하고 있는 부와 명예가 자녀의 경제적 지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이다.

 


일찌감치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은수저를 빗댄 수저계급론이 유행하고 있었다.

가구의 자산과 소득 수준을 나누어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나뉜다.

금수저는 자산 20억 원 또는 가구 연 수입 2억 원 이상인 사람을 가리킨다.

은수저는 자산 10억 원 이상 또는 가구 연 수입 8000만 원 이상,

동수저는 자산 5억 원 이상 또는 가구 연 수입 5500만 원 이상인 자, 그 미만은 모두 흙수저다.

문제는 부모의 든든한 재력이 없으면 흙수저가 금수저로 변화될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SNS에서는 ‘헬조선’ 즉, 지옥 같은 한국이라는 말이 젊은층 사이에서 오가고 있다.

또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를 넘어, 정해지지 않은 수를 뜻하는 N을 조합해

예 모든 것을 다 포기했다는 ‘N포세대’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이러한 현실은 부모세대의 입장에서 매우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누군가가 흙수저인 삶을 사는 부모에게 금수저로 상향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10년 혹은 20년 동안 등골이 휘도록 고생한다 해도 그 길을 선택할 것이다.

내 자식이 금수저인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고난을 감내하는 것쯤은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 영혼의 부모님이신 예수님(안상홍님)께서도 동일한 선택을 하셨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히브리서 12장 2절-

 


예수님(안상홍님)께서는 십자가 형벌을 당하실 필요도, 그에 따른 부끄러움을 참으실 필요도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피조물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뺨을 맞고 침 뱉음을 당하며 일평생을 흙수저보다 못한 삶을 사셨다.

죄를 지은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난의 길도 ‘즐거움’이라고 표현하시며 자녀들에게 무조건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장 14~20절-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예수님(안상홍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한 예식이 있었다.

바로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다. 유월절은 다름 아닌 구원받을 자녀들을 위해

준비해놓으신 아버지(안상홍님)의 마지막 유언이자 선물이었던 것이다.

살과 피가 찢어지는 고통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신 아버지(안상홍님)의

마음을 깨달은 기독교인이라면 과연 어떠한 행동을 취하겠는가?

 


이미 정해져버린 운명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내 흙수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남이 가지고 있는 은수저나 금수저로 갈아타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안상홍님)께서는 지옥으로 갈 뻔했던 하나님의교회 우리들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으셨다.

새 언약 유월절로 금수저를 물려주신 것이다.

 


흙수저보다 못한 상태에 놓여 있던 하나님의교회 우리들에게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금수저의 길을 활짝 열어주신 아버지(안상홍님).

천사들도 부러워할 하늘나라 상위 1%인 금수저의 길이 지금 당신에게도 열려 있다.

 

 

출처_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

 

<참고자료>
1. ‘20代 수저계급론,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대한민국 청년들의 웃픈 현실"’, 조선닷컴, 2015. 10. 2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28/2015102802461.html
 2. ‘은수저’, 경남신문, 2015. 11. 30.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65227
 3. ‘‘수저계급론’의 현실화’, 영남일보, 2015. 12. 1.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51201.010380808340001
 4. ‘금수저 만들기’, 한국금융신문, 2015. 11. 30.
http://www.fntimes.com/paper/view.aspx?num=142830

 

 

 

 

마태복음 4장 17~22절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으며

그것으로 생업을 유지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들 곁에 오셔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 반응하고 선택을 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는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필요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죄악 세상에서 고통하는 인생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구원 주러 오신 것이지

하나님께서 어떤 유익을 얻자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으라, 이런 길을 걸으라고 지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았던 제자들은 그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좋았습니다.

그 길이 비록 험난하고, 그들 앞에 찬란한 영광보다 가시밭길이 더 많이 놓여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더 좋았기에 그들은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도 단 한 사람,

선택을 잘못한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14~16절

 “그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가룟 유다가 예수님보다 은 삼십을 선택하고 예수님을 죽음에 넘겨줄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가룟 유다처럼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서 영원을 잃어버리고

영원한 천국을 놓쳐버리는 안타까움을 범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얼마나 영광된 직분입니까?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직접 배우고 받아들인

가룟 유다였지만 그는 예수님보다 재물이 더 탐이 났습니다.

재물을 선택하고 보니 하나님이 그때부터 달리 보입니다.

그리스도를 깨닫고 따라다녔던 요한이나 베드로 같은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가룟 유다는 별반 기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따라다녀봐도 고생스럽기만 하고, 사람들에게 환영받거나 인기를 누리는 것도 아니요,

 오히려 ‘이단’이라는 조롱을 받고 “사람이 어찌 하나님이냐”고 훼방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그릇된 선택을 한 가룟 유다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지만

후회는 할지언정 회개는 하지 못한 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 이 순간 가룟 유다는

과연 어디 있을까요? 무엇을 할까요?

 

 

 

 

예수님의 열한 제자 또한 어렵고 힘든 현실 속에서도 영원을 바라보았습니다.

순간을 선택했다면 그들도 가룟 유다처럼 세상과 영합하여 그리스도를 배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을 선택했기에 그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이라 비방하고,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라 한다”면서 돌을 들어 치려 하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우리의 믿음 생활도

영원을 선택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교회 우리들은 순간을 선택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영원을 선택하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핍박이 와도, 남들이 다소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교회 우리는 영원을 선택했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을 향해 힘차게 달려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18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교회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도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간을 선택했다면 성경에 어떻게 되어있든 세상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일요일, 크리스마스를 지키겠으나

하나님의교회 우리가 선택한 것은 영원을 위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러다 보니 하나님의교회 우리는 사람의 계명이 아닌 하나님의 계명을,

 아버지로서의 하나님만 믿는 것이 아닌,

아버지 하나님(안상홍님)과 더불어서 어머니 하나님도 존재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준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2~25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열심히 밤을 새워가며 시험공부를 했지만 성적이 잘 나오지 않거나,

열심히 일을 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과연 본인이 일을 제대로 했는지의 여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옛 속담에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매어 쓰지는 못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바쁘다 해도 바늘 허리에다 실을 매어 쓸 수 없는 것같이,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갖추어야 할 것은 갖추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격식이 있는 법이다.

가령 운전을 할 때 엑셀을 무작정 밟는다 해서 차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급해도 먼저 키를 꽂고 시동을 걸어야 비로소 차가 움직인다.

건물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다. 순서와 절차 없이 하루아침에 건물이 뚝딱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먼저 설계를 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갖추어야 원하는 건물이 지어진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원받기를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또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열심보다는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뜻대로 말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

 


성경은 구원의 매뉴얼과도 같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성경의 매뉴얼대로 행하기만 하면 된다.

같은 뜻으로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도 성경말씀 외에 더하면 재앙을 받고,

제하여 버리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강조하셨다.

성경 중심의 신앙을 영위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

성경의 매뉴얼에 없는 일요일예배,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등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성경에 없어도 우리 목사님이 믿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어요”라며

 ‘우리목사님’의 말에 더 맹종한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목사님을 믿는 신앙인 셈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구원의 주체자는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우리 목사님’ 신앙을 계속 고집하며

성경에 없는 예배들을 지킨다면 훗날 신앙적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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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의 축복 속에서

제2회 새노래 페스티벌 예선이 있었는데요,

부족할지라도 새노래로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께

감사와 찬양을 올릴 수 있어 기쁘고 즐거웠던 하루였답니다^^

 

 

하나님의교회가 '새노래'를 부르는 이유??  성경 예언의 성취이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들은 무슨 노래든 새노래라고 칭하면 모두 새노래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요한계시록 14장1~3절-

 


 


 

 

 

새노래는 하나님께서 좌정해 계시는 시온산에서 구원받는 성도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즉 시온에서 부르는 노래가 새노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온은 어떤 곳일까요?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이사야 33장20절-

 


 


시온은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절기는 안식일,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등이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교회는

단 한 곳, 하나님의교회뿐입니다.

절기 지키는 시온, 하나님의교회에서 부르는 찬송이

성경에서 예언한 새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에 따라 이 시대 구원자이신

성령 안상홍 하나님과 신부이신 새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노래가 하나님의교회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출처_패스브티브닷컴

 

 

 

 

출처: 서울 타임캡슐-서울시청 홈페이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가 있다. 타임캡슐이다.

타임캡슐 안에는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기억상자들이 저장되어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고, 자신이 제일 아끼던 물건들이 있으며,

혹은 그 시대에 유명했던 과자가 들어 있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의 타임캡슐이 30년 만에 공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길이 약 4m인 타임캡슐 안에는 당시 유명했던 보그 잡지,

코닥 카메라, 캔맥주, 무디블루스의 음반 등이 들어 있었다.

1983년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국제디자인컨퍼런스의 부대 행사에서

공개된 땅 속에 묻어 두었던 스티브 잡스의 물건들이었다.

이 물건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로 하여금 향수를 불러일으켰으며

옛 추억에 잠기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60년 전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타임캡슐이

학교 신축 건물 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타임캡슐 안에는 1957년에 실험했던 도구들과 문서들이 있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타임캡슐 속 내용물들을 꺼내보려면 무려 2957년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

당시 타임캡슐을 만든 헤럴드 에저튼 교수가 캡슐에 아르곤 가스와 탄소 14호를 함께 넣었는데

2957년 전에 열면 내용물이 파괴되게끔 제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서울 1000년 타임캡슐’이 가장 유명하다.

서울이 수도가 된 지 600년째인 1994년에 600점의 물품을 담아 남산골 한옥마을에 묻었다고 한다.

높이 1.7m, 직경 1.3m 크기의 타임캡슐 안에는 기저귀, 담배, 아래아한글2.5,

인공심장, 화투, 삐삐, 상품권 등이 들어 있다.

 ‘서울 1000년 타임캡슐’의 개봉연도는 2394년 11월 29일이라고 한다.

 


이렇듯 타임캡슐은 먼 훗날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요즘에는 개개인의 일상을 보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자체적으로 타임캡슐을 만든다고 한다.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소장품들을 튼튼한 플라스틱 상자에 넣고,

그것을 흙 속 깊은 곳에 묻어두어 대략 10년 후에 개봉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굳이 타임캡슐을 만들지 않아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삶 모두가 저장된 타임캡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퍼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0:12)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행적이 고스란히 기록되고 보관되는 장소가 있다.

바로 ‘생명책’이라는 타임캡슐이다.

이 타임캡슐은 하나님의교회 엘로힘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으로,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행적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생명책의 기록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 결정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생명책이라는 타입캡슐에 좋은 기록만을 남길 수 있을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7~8)

 


성경 속 인물 중에는 생명책에 아주 좋은 기록을 남겼던 사람이 사도 바울이다.

사도 바울은 당시 교권을 잡고 있었던 기득권 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믿음을 지켰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핍박과 서러움과 아픔을 당했지만

그의 모든 행적들이 천국의 타임캡슐에 저장되어 지금은 하늘에서 위로와 영광을 받고 있다.

 

 

 

 


 

 

어느덧 2015년이라는 시간도 단 한 주만을 남겨놓고 있다.

하나님의교회 우리도 그동안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소중하게 지켰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정초에 하나님의교회 엘로힘하나님께 다짐했던 약속들도 잘 지켰는지 되돌아보자.

만약 부족한 점이 있다면 2016년에는 마음을 다하여 사도 바울처럼 좋은 신앙의 결과를 내길 바란다.

훗날 미래에 보게 될 나의 타임캡슐 안에 ‘구원’이라는 보물을 담으면서.


 

<참고자료>
1. ‘타임캡슐’, 시사제주, 2015. 10. 14.
http://www.sisa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249379
 2. ‘미국 219년 전 타임캡슐, 소식에 '서울 1000년 타임캡슐' 재조명’, 베리타스 알파, 2014. 12. 13.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34176

 

 

출처_패스티브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