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별이의 소소한 하루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의 증거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정금보다 소중히 지키고 전합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는 교회는 전세계를 둘러보아도 오직 하나님의교회뿐입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는 하나님의 계명은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에스겔 18장 21절

내 모든 율례을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의 법과 율례를 소중히 여기고 지키면 정녕 살고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만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교회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명의 계명을 버린 세상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될까요?

 

 

에스겔20장 24-25절

이는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 열조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며 또 내가 그들에게 선치 못한 율례와 능히 살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능히 살게 하지 못할 규례를 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예언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 세상 기독교인들은 살지 못할 사람의 계명을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인 새언약 안식일을 버리고 사람의 계명인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하나님의 계명인 새언약 유월절을 버리고 사람의 계명인 크리스마스를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 자들에게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7절-9절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사람의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즉 성경에 없는 사람의 계명을 지켜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일요일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세상 기독교인들은 자신들도

구원받았다고 큰소리 치지만 자기 생각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셔야 진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6장 19절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가볍게 생각하고 버렸기 때문에 재앙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것도 우리의 생각의 결과며 재앙을 받는 것도 우리들의 생각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교회는 살 수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소중히 지키고 전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소망하는 분이라면 하나님의 계명을 정금보다 귀히 여기는 하나님의교회로 오세요^^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행하는 규례가 바로 침례입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행하는 침례는 우리가 하늘에서 범했던 죄를 사함받고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나아가는 첫걸음으로써, 인생에 비유하자면 모태에서 아기가 출생하는 시기와 동일합니다.

사람의 육신도 성장하는 과정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세상의 이치를 배워

장성한 어른이 되는 것같이 하나님의교회 우리의 영혼도 침례식을 통하여 죄와 허물을 벗고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의 자녀로서 새생명을 입는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와 하늘의 이치를 습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5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베드로전서 3장 21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몸의 때)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요즘 TV에서는 많은 요리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위주의 방송을 했다면

지금은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먹는 프로그램이 대세다.

대세를 따라 여러 방송사에서는 요리 프로그램을 편성했고,

대부분의 요리 프로그램들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한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유명 쉐프를 앞세웠다.

출연자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가져와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

출연자가 원하는 요리를 주어진 시간 안에 근사하게 만들어낸다.

또 요리에 뜻을 둔 일반인들이 출연해서 요리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도 있다.

심사위원이 제시하는 미션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지를 평가하여 우승자에게는 큰 상금과 혜택이 주어진다.

 

 

 

 

 


또 다른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맛집을 찾아가 맛의 비결을 ‘황금 레시피’라는 명칭으로 소개한다.

재료 손질부터 양념장의 황금비율, 조리법까지 상세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누구든지 맛집의 요리를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주부들의 집밥 고민을 덜어주는 한 요리 프로그램은 방송 후는 물론

꾸준히 인기검색어에 등장하면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의 재료들로 간단하고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비법들을 알려주기 때문에

주부들뿐 아니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 번쯤 따라해보고 싶은 레시피라고 한다.


이러한 요리 프로그램들이 인기에 힘입어 방송에서 사용된 재료들은 불티나게 팔리기도 하고,

인터넷에서는 ○○○ 황금레시피, ○○○ 맛있게 만드는 법 등

먹고 싶은 음식의 레시피와 요리된 사진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레시피대로만 한다면 대부분 성공적인 요리를 할 수 있지만

레시피에서 재료가 몇 가지 빠진다거나 과정을 건너뛰게 되면 그 맛은 보장할 수 없다.

소개된 레시피에는 음식의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재료와 양념들의 황금비율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관심은 비단 최근에 와서 높아진 것은 아니다.

인류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다.

우리 몸은 필요한 영양분들이 고루 섭취되고, 음식을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필수적인 ‘먹는’ 문제는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사는’ 문제로 이어진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6:53~55)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는 이 땅에서 잠시 잠깐 살아가는 삶보다는

영원히 살아갈 천국의 삶에 대한 준비를 강조하셨다(요한복음 6:63).

사람들이 살기 위해 무언가 먹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천국에서 살기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살과 피다.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 우리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먹는’ 것으로 영원히 ‘사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천국 가는 황금 레시피는 하나님의교회 새 언약 유월절이다.

하나님의교회 유월절에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가 천국에 가는 확실한 방법이다.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 알려주신 황금 레시피를 무시하고

일요일 예배나 크리스마스 등의 불순물을 넣거나 유월절을 빼버리게 되면 천국은 기대할 수 없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레시피는 어렵지 않다.

천국 가는 황금 레시피, 하나님의교회 유월절은 이미 모두에게 제공되었다.

누구든지 천국에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레시피대로 유월절을 지켜보자.

그러면 천국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

 

출처_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교회 우리는 성경이 증거하는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따라

 이스라엘 나라가 독립한 1948년, 다윗의 예언에 따라 30세가 되던 해에

 침례를 받으시고 복음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한 책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예언 중에서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께서

오시는 시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는 연도법에 따라

몇 년도에 오신다고 쓰여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가지 결정적인 징조를 통해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 오시는 시기를 정확히 알려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2-33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의 대화 중 하셨던 말씀입니다.

이 대화의 주제는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입니다.

지금 눈앞에 예수님을 두고 ‘주의 임하심’을 논한다는 것은

또 다른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의 오실 시기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재림 예수님께서 언제 오십니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낼 때 올 것이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두번째 성육신하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을 영접하여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허락받으시길 바랍니다.

 

 

재림예수님은 어디에 오실까?

 

 

광야에 물이 솟아 연못을 이루게 하시고

사막 같은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신 분은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이셨습니다.

우리 영혼 구원을 위해 두번째 다시 육체의 옷을 입으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은

선지자들이 지목하고 있는 구원의 장소인 해돋는 동방땅끝 대한민국에 오셨습니다.

전 세계 200여 나라에서 새언약 유월절로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은 오직 대한민국뿐이었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따라 대한민국에 오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을 끝까지 믿고 따르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성경에는 두 번째 오시는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에 대한 예언들이 많이 있다.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그 많은 예언 중 ‘과연 재림 예수님께서는 어디에 오시냐’ 하는 것이다.

구원받고자 하는 성도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구원자께서 오시는 장소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구원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두 번째’라는 단어다.

하나님께서 영으로만 계신다면 첫 번째, 두 번째와 같은 서수로 표현할 이유가 없다.

영으로는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번째 나타나신다’는 것은

첫 번째 이스라엘에 오셨던 것처럼 두 번째도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재림 예수님께서 오시되 어디에 오시는 것일까?

사람으로 태어나신다면 분명 초림 예수님처럼 태어나는 장소가 있지 않겠는가.

초림 예수님 당시에도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장소가 어디인가를 놓고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위에 기록된 말씀을 본다면 두 번째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다.

그렇다. 반드시 재림 예수님께서 오시는 장소에서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다시 말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그곳에 재림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것이다.

성경 가운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장면이 기록된 곳이 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7:1~3)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하나님께서 계시를 받아 기록한 책이 요한계시록이다.

그 예언 가운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장면이다.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바람이 불 기전 하나님의 인을 쳐서

구원 받게 하는 이 장면에서 하나님의 인이 등장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해 돋는 곳이다.

동쪽 또는 동방이라 일컫는 해 돋는 이곳에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요한은 ‘해 돋는 데로부터’라고 기록했다. ~부터라는 것은 그곳이 시작점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분명 해 돋는 동방이 구원자이신 재림 예수님께서 등장하시는 장소임을 알 수 있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두번째 오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이와 함께 요한은 이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인이 등장하는 시기를 ‘이 일 후’라고 지목하고 있다.

요한이 말한 ‘이 일’은 바로 앞의 말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요한계시록 6:12~13)


해가 총담처럼 검게 변한다. 총담은 말의 꼬리로 만든 담요다.

검은 말꼬리로 담요를 만들었으니 ‘아주 검다’는 의미다.

그리고 달은 피처럼 붉게 된다. 또한 하늘의 별들이 우수수 떨어진다고 한다.

이런 일들은 과연 어떤 일에 대한 징조인지 마태복음에서 알 수 있다.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

 (마태복음 24:29~30)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태복음 24:3)


해가 검게 변하며 달이 빛을 잃어버리고 별들이 떨어지는 이 모든 일은 바로 ‘인자가 오시는 징조’다.

인자는 재림 예수님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감람산 위에 계실 때 주의 임하심에 대해 질문했다.

지금 눈앞에 주께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주의 임하심을 묻는다는 것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 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요한계시록의 ‘이 일 후’는 재림 예수님께서 오시는 징조가 나타난 후 구원의 역사가 해 돋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즉,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해 돋는 곳’은 재림 예수님께서 오시는 장소라는 것을 우리는 재차 확인할 수 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해 돋는 곳은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게서 오시는 장소

 

 


이러한 예언은 비단 신약성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사야 선지자는 동방에 오시는 구원자에 대한 예언으로 고레스 왕의 등장을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이사야 41:2~4)


동방에서 오는 한 사람은 곧 우리의 구원자임을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예언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동쪽에 위치한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이 이루었다.

그러나 2차적 예언은 반드시 하나님께서만 성취할 수 있다.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은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창조한 바인 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이사야 41:17~20)

 


이사야 선지자는 고레스 왕에 대한 예언 가운데 “그가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 이런 일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성급한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사야 35:4~6)


 

 

광야에 물이 솟아 연못을 이루게 하시는 분,

사막 같은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시는 분은 고레스가 아닌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동방에 등장하는 한 사람은 우리의 영혼 구원을 위해 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의 ‘해 돋는 곳’과 이사야서에서 말하고 있는 ‘동방’은 과연 어디일까?

구원의 역사가 펼쳐지며 재림 예수님께서 등장하시는 이곳은 바로 ‘대한민국’을 나타내고 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밧모섬과 이사야서가 기록된 이스라엘에서 동방, 땅끝에는 ‘대한민국’이 위치하고 있다.

선지자들이 지목하고 있는 구원의 장소가 대한민국인 것은 그곳에 하나님의 인인 유월절이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증거가 된다.

전 세계 200여 나라에서 유월절이 시작된 곳은 오직 ‘대한민국’밖에 없다.

그곳에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됐으며, 그곳이 바로 재림 예수님께서 등장하시는 장소다.

 

출처_패스티브닷컴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원자다. 인류는 왜 구원자가 필요한지 또 인류에게 닥친 위기는 무엇이기에 구원자가 등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는 이 시대의 구원자는 과연 누구인지 알아보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장10절]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이것이다. 바로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함이다. 지구상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명이 있다. 굳이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주려고 하는 ‘생명’은 무엇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장63절]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신의 수한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처럼 무익한 육신의 목숨이 아닌 영원히 사는 영혼의 생명, 즉 ‘영생’을 주고 싶어 하신 것이다. 유한한 삶을 생명의 전부로 여기고 살아가는 인류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류는 왜 영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 해답은 창조의 역사가 수록된 창세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16~17절]


하나님께서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살게 하셨다. 모든 것을 다스리며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셨다. 단 하나, 바로 선악과만큼은 먹지 말라는 금령을 내렸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단언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뱀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먹었다.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결과는 인류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사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어도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있었다.

 

 

선악과를 먹고 사망에 이르게 된 인류들 하나님의교회 생명과를 먹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3장22절]


그 방법은 바로 생명과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라 할지라도 생명과를 먹는다면 영생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장24절]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과에 손을 댈 수 없도록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켰다. 결국 생명과의 길은 막혔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이후 지금까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그러므로 죽음의 굴레에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손댈 수 없었던 그 생명과를 가지고 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장53절]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며 주신 것이 당신의 살과 피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3장34~35절]


창세의 역사 속에 감추어진 것은 무엇인가.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감추어버린 것. 바로 생명과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라고 하시며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면 꼭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교회 유월절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을까?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장17절, 26~28절]


인자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된다. 그러니 유월절은 에덴동산의 생명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인류는 구원 얻기 위해 유월절을 지켜야 하며 유월절을 지키는 것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하신 것이다(누가복음 22:15). 이 말씀 속에는 유월절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내포하고 있다.

 

 

에덴동산의 생명과 유워절을 회복하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그런데 인류에게 지키라고 예수님께서 전하여 주신 유월절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되고 말았다. 생명과의 진리인 유월절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인류에게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를 회복하기 위해 재림이라는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장27~28절]


두 번째 나타나심, 즉 재림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처음부터 인류를 위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며 단 한 번도 변치 않은 사랑이다. 그러기에 두 번째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재림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에덴동산의 생명과인 ‘유월절’을 회복해야만 한다.


‘왜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셔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그토록 원했던 ‘생명과’를 우리에게 찾아주는 것.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으로 막아놓았던 생명과로 가는 그 길을, 오직 하나님만이 열어주실 수 있는 그 길을, 유월절이라는 진리로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이 땅에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출처_패스티브닷컴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마땅히 행할 도리가 '효'입니다.

지상의 일들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 역할을 하기에,

우리가 육적 가정을 통해 영적 가정에 대한 내용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영의 부모님이신 하나님께 효를 행한 믿음의 선진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의 행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효의 마음을 배워보겠습니다.

 

 

 

 

누가복음 7장 36~49절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한 여인이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행적이 드러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이 여인이 행한 일도

전하고 기념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기록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6~13절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 한 옥합을 예수님께 부어드렸던 이면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행한 일을 다 전파하라 하셨을까요?

 

 

 

 

사람은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항상 바라보십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이면에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하늘 죄인 된 우리를 살리시려 육체 옷을 입고 친히 이 땅까지 오신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을 향한 각별한 효심이 내재해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최고의 예우를 받으셔도 부족하련만 사람들의 비방과 훼방,

조롱을 받으시면서 끝까지 구원의 손길을 놓지 않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셨던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은혜를 가슴 깊이 깨달았기에

고가의 향유도 아낌없이 부어드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마리아가 흘린 눈물에는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처절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땅까지 오셨습니까, 또 이런 삶을 살고 계십니까'

하는 회개와 깨달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눈물에서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읽으신 예수님께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행한 일들을 전파하여

저를 기념하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하늘 아버지 안상홍님, 하늘 어머니시요

하나님의교회 우리는 성령이 친히 증거하신 하늘의 아들들과 딸들입니다.

천국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에 대해

이와 같은 진실된 회개와 더불어 효를 행했을 때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께서는 진실로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이 땅에 오기 전 하나님의교회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며 하늘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단에게 미혹을 당해 범죄하고 죄의 옷을 입고

이땅에 쫓겨와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하늘아버지 안상홍님, 하늘어머니께서 하늘 영광도

마다하시고 자기를 낮추어 천사보다 못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교회 우리가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여시며 희생의 세월을 보내고 계십니다.

지금도 사단은 인생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께 영적 효도를 행하지 못하게 훼방합니다.

 

육신의 부모님께도 우리가 효의 도리를 다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에 그칠 것이 아니라 육을 통해 영의 이치도 올바르게 깨달아서

막달라 마리아처럼 온전한 회개를 이루고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께

더욱더 정성스러운 효의 도리를 다해야 할 줄 믿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예언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하는 것. ‘예언’에 대해 사전에서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는 경제적, 지질학적, 환경적 요인 등 모든 면에서 불안하다. 미래를 알게 된다면 재앙을 피할 수 있고 행복이나 성공을 얻는 데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미래를 점치는 데 꽤나 관심이 많다. 자신의 내일과 미래를 알고 싶어 무속인이나 역술인을 찾아가고 타로, 손금, 관상, 심지어 일간지에 실린 ‘오늘의 운세’ 따위에 명운을 걸기도 한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터.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예언의 확실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경우를 보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점성학에 의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예언은 철자와 문장의 변형, 그리고 생략, 고어와 외국어를 뒤섞어 놓은 혼란스러운 표기법, 일반명사와 고유명사의 상호 변환, 무작위적인 순서를 특색으로 하는 4행시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갖가지 임의적 해석들이 난무한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대한 해석은 최근에 일어난 재앙과 유사한 내용이 담긴 4행시를 찾아낸 후 유사한 내용은 부각시키고 다른 내용은 대강 둘러대는 식이다. 어쩌면 그의 예언은 꿈보다 해몽이 좋은 건지도 모른다.

 

 

[세계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성경은 예언서다. 성경의 예언은 모호하지 않고 구체적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 객관적인 증거로는 지나간 세계 역사를 들 수 있는데, 이러한 모든 예언의 중심에 바로 성경이 있고 그 예언을 이루시고 세계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이사야 41:21~23)

 

역사적으로 바벨론(신바빌로니아)을 무너뜨린 나라가 메대·바사(페르시아)였다. 그 후 헬라(알렉산더제국)가 등장하여 온 세계를 다스렸으며 알렉산더의 죽음 이후에는 리시마커스, 카산드로스, 셀리우커스, 프톨레마이우스에 의해 네 나라로 분할 통치되었다. 그러한 수백 년의 역사를 이미 성경은 바벨론이 무너지기 전에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세계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확실한 증거를 보이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수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털이 많은 수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 권세만 못하리라 (다니엘 8:20~22)

 

성경은 바벨론 이후로 등장할 나라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 수 백 년 이후에 일어날 일까지도 예언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세계사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확실한 증거를 보이신 분이 바로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이시며 인류 역사를 이끌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이시다. 성경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예언하고 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태복음 24:3~8)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

 

 

성경은 지나간 과거의 역사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진위를 판별할 수 없는 막연하고 모호한 예언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예언서인 성경은 반드시 알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를 움직이시며 예언을 이루어가시는 분이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이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베드로후서 1:19~21)

 

<참고자료>
‘노스트라다무스’, 네이버캐스트

 

 

 

 

 

하나님을 믿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교회 외에는 엘로힘 하나님

곧 아버지하나님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새 언약 진리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새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만이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알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1~3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의 법을 마음에 새기며

준행하는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오직 그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레미야 31장 34절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어떤 사람들이 다시는 하나님을 알라 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였습니까?

바로 새 언약의 법을 마음에 새기며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다시는 하나님을 알라고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하나님을 온전히 안다는 뜻도 포함되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에서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을 마음에 새기고 지키는 백성이

엘로힘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됩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새 언약이 법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결코

엘로힘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새 언약을 마음에 새기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어머니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언약의 법을 깨닫고 행하여

엘로힘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의 백성

즉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안상홍님을 재림 그리스도로 영접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성경에 명시된 일곱째 날 안식일을 요일제도상 토요일로 바르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기독교인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일곱째 날인 안식일이 오늘날의 요일제도 상 일요일(주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은 토요일임을 성경은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토요일이 안식일인 것을 알면서도 관습에 젖어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빼는 행위를 엄히 견책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의 이 책에 기록된 재앙 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현재 우리는 7일로 구성된 한 주(週)를 가리켜

첫째 날, 둘째 날, … 등으로 부르지 않고 일요일, 월요일 …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로마에서 제정한 것인데 한 주간의 첫째 날은 일요일이라 부르기로 약속했고,

둘째 날은 월요일, 셋째 날은 화요일… 일곱째 날은 토요일로 부를 것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1) 달력을 보면, 한 주는 7 요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달력 맨 처음에 등장하는 첫째 날은 일요일이며, 일곱째 날은 토요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요일을 가리켜 주말(週末)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2) 그리고 많은 사람이 즐겨 시청하는 "주말(週末)의 명화"를

무슨 요일에 방영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3) 또한, 일기 예보(日氣豫報)하는 시간에

 "주말과 휴일의 날씨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이는 토요일과 일요일의 날씨에 대한 예보가 아닙니까?


4) 국어사전에도 일요일은 "칠요일의 첫째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토요일은 "일요일로부터 일곱째 날, 주말(週末)"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상 우리 주위의 상식들을 비추어 보더라도

일요일은 한 주의 첫째 날이고, 일곱째 날은 토요일입니다.


5) 성경도 예수님의 부활 장면 속에서

일곱째 날인 안식일은 토요일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16장 9절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예수님께서 무덤 가운데서 부활하신 날은

 "안식 후 첫날"(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지내고 난 첫날)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은 지금의 요일상으로는 일요일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 기독교 신자들이 부활절을 일요일에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이 부분을 공동번역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이 일요일이었다면,

부활하시기 전날 즉 안식일은 무슨 요일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토요일) 다음날인 첫째 날(일요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부활 장면을 통해서도

일곱째 날 안식일이 토요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사람들이 만든 법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안상홍님)의 법을 따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안상홍님) 밖에는 베풀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안상홍님)께서 심판을 베푸시는 마지막 날에 구원을 얻을 성도들은

오직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들뿐입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안식일을 끝까지 지켜 구원에 이릅시다^^